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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aside> 💡 한근연은 고려대학교 중앙 인문과학 동아리입니다. 1985년 창립된 한근연은 1980년부터 민주화운동을 선도하는 언더서클 중 하나였습니다. 이후 1985년, 논쟁 끝에 고려대학교 총학생회가 부활하고 동아리연합회가 결성되면서 한근연 역시 중앙동아리로 공개되었습니다. 과거 민주화운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21세기의 새로운 주제들을 탐사하는 한근연은 고려대학교에 몇 남지 않은 전통 있는 인문과학 동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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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한근연의 공식 소개 문구는 이와 같다. 동아리 홍보 자료나 공식 웹사이트 등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문구이고, 아무런 비판 없이 지난 몇 년 간 쉬이 받아들여져 왔다.

그러나 이 문구에는 몇 가지 어폐가 있다. 우선,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1984년에 부활하였으며, 한근연은 학내 운동 세력 통폐합 조류에 힘입어 1986년에 창립되었다. 따라서 ‘1985년’이라는 시간대는 수정할 필요가 있으며, 1986년 이전에는 ‘한국근현대사연구회’라는 단일한 서클로서 존재하지 않았기에 ‘언더서클 중 하나였습니다’와 ‘중앙동아리로 공개되었다’라는 표현 또한 부적절하다. 만약 한근연의 전신인 언더서클의 역사까지 구태여 언급하고 싶다면, 개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서클에 기준해 ‘1970년부터’로 소급하는 것이 더욱 정확할 것이다.

한근연은 ‘한국근현대사연구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역사 학술 활동을 그 정체성으로 삼는 동아리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정작 그 자신의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모순적이다. 『한근연사』 편찬 프로젝트는 이러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한근연의 역사는 기록된 바 없다. 한근연의 역사는 술자리에서 떠드는 이야기로, 선배에서 선배에게로 전해진 구전으로써만 내려져 왔다. 그러나 현재 동아리원 24명 중 대다수는 코로나19 범유행 시기(2019.12~ing)에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다. 주기적으로 진행되던 선배와의 만남 기회는 사라졌고, 자연스레 한근연의 역사 또한 잊혀져 갔다.

시간을 겪으며 기억은 자연스레 흐려지고 윤색된다. 지금이 『한근연사』를 서술할 수 있는 가장 적실한 시점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2022년 8월 12일 제1차 운영진회의에서 ‘한국근현대사 연구회 동아리 역사기록(편찬) 작업에 관한 건’이 통과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2022년 12월, 약 4개월에 걸친 프로젝트는 소책자 발간을 끝으로 마무리되었다.

실천적 학술 동아리라는 집단이 존속하는 한 끝날 수 없는 질문이 있다.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이전의 선배들도 끊임없이 해온 고민이며, 우리마저도 아직까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무릇 역사 공부란 과거를 조명함으로써 현재를 발견하는 과정이듯이, 한근연의 나아갈 길을 고민할 모든 한근인들에게 『한근연사』가 실마리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근연의 역사를 논할 때 학생운동을 논하지 않을 수 없다. 본격적인 서술에 앞서, 본고는 학생운동을 ‘대학 및 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에 기반하여 개혁적인 변화를 목표로 하는 대학생 주도의 집단적·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특히 1990년대 이후 화두로 등장하는 ‘운동성의 감소’ 또한 동아리 내 학생운동가 성원의 감소로 정의한다.

위 정의를 전제로 본고는 현재 ‘한국근현대사연구회’가 만들어지기까지의 역사를 규명하고자 한다. 1986년 한근연의 창립 이전까지는 ‘한근연이 창립하기까지의 역사’이며, 창립 이후부터는 ‘현재의 한근연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이다. 현재 한근연은 ‘대학 및 정치·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논의하지만, 구성원이 통일된 ‘개혁적인 변화를 목표로’하지 않으며 ‘집단적·조직적·지속적인 사회운동’에 참여하지 않으므로 학생운동을 정체성으로 하는 동아리로 볼 수 없다. 여기서 사회운동이란 ‘조직적이고 지속적이며 자의식적인 도전’이며, ‘참여자들 사이에 공유된 정체성을 암시한다’(Tilly, 1984)라는 정의를 따른다.

한근연의 역사는 기존 연구에 포착되지 않는다. 기존 학생운동사 연구는 대개 거시적인 시각으로 학생운동사의 양상을 조명하며, 그마저도 1990년 초를 끝으로 대개 서술이 마무리지어졌다.[1] 따라서 시대를 겪은 실제 개인의 사적인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인터뷰 대상자 선정에는 ‘눈덩이 굴리기 방식(Snowball Sampling)’을 사용했다. 한근연 출신 선배들의 자발적 모임인 ‘사우회’에 인터뷰이 모집 공고를 올린 다음, 가장 먼저 연락이 닿은 첫 인터뷰이의 사적 연결망 중에서 추천을 받아 다음 대상자를 확보했다. 80학번부터 10학번까지 총 5명의 선배를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2]

인터뷰를 통해 당시 한근연의 지형을 파악한 후에는, 문헌조사를 실시해 기억의 공백을 보완했다. 대개 80-90년대의 학생운동을 분석한 연구논문 및 단행본 등을 참고했으며, 1990년대 이후 동아리 내부의 점진적인 변화 조사에는 동아리 자체 문건 또한 사용했다.